옛 사람들이 남긴 생활문화의 흔적이 있는 공간
(궁권, 관아 등)
유적을 이루고 있는 개개의 장소
(건물, 연못, 도로)
옛 사람들이 남긴 물건
(토기, 기와, 자기 등)
광화문광장과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 1907~1909년 추정
예조는 고려~조선시대의 관청으로 왕실의 혼례 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일, 제사와 과거시험 등을 관장하는 기관.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예조 터 유구는 조선후기 삼군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 당시 예조는 의정부와 이조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삼군부는 조선 초기 군무를 관장하던 관청입니다. 조선 초기 설립 후 폐지되었다가 흥선대원군 때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 예조와 삼군부 건물의 위치는 시기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무소임의 문무당상관(퇴직을 앞둔 정3품 이상의 고위관직)을 소속시켜 대우하는 기관
고려~조선시대에 관리들의 감찰을 담당한 기관
조선시대 군사관계 업무를 담당한 기관
고려~조선시대 법률, 사송, 형옥, 노예에 관한 일을 담당한 기관
고려~조선시대 산림, 공장, 건축, 도요공, 야금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한 기관
조선시대 행정부 최고 기관
고려~조선시대 관리를 뽑거나 배치하는 일을 담당한 기관
고려~조선시대 호구, 공부, 전토 및 식량과 재화, 경제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 기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관할하는 관청
2지점은 서울정부청사 앞쪽으로 삼군부 영역으로 추정.
삼군부는 조선시대 초에 만들어졌다가 세종때부터 예조로 바뀌어 유지되나 고종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삼군부로 부활되었습니다.
조사결과 삼군부의 외랑으로 추정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행랑의 전면으로 조성된 배수로와,
교란층을 중심으로 피트조사를 실시한 구간에서 선대 건물지의 양상이 확인되었습니다.
행랑유구는 지면을 기준으로 약 70~80m내외의 깊이부터 확인되었고,
서측의 보도구간에서 건물지의 흔적 일부 확인되었습니다.
지점에서는 건물지 3동과 추정 담장석렬 1기등이 확인되었습니다.
3지점에서 확인된 유구는 지표에서 1.7~2.1m 깊이에서 확인되었습니다.
확인된 유구는 3지점 남측에서 건물지1과 건물지2, 담장석렬이 확인되었습니다.
북측3에서 건물지3이 확인되었다. 3지점 중앙부는 교란으로 인해 훼손되어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4지점은 사헌부, 병조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구간입니다.
이중 조사 유구는 4지점을 북측(사헌부 추정 영역)을 중심으로 확인되었으며
4지점의 남측(병조 추정)은 지하구조물로 인해 대부분의 영역이 교란된 상태였습니다.
조사결과 사헌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지, 행랑, 담장, 우물 등이 확인되었으며
육조거리 지역으로는 남북방향의 배수로(추정)가 확인되었고, 출토유물은 전반적으로 16세기가
중심이며, 유구는 자연층인 명황색 점사질토를 기반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5지점은 형조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구간입니다. 이중 조사 유구는 조사지역의 남서측과 남동측
일부에서만 확인되었고, 5지점의 중앙은 지하철 출입구 시설과 관련한 지하구조물로 인해
대부분의 영역이 교란된 상태였습니다.
조사결과, 추정 배수로 2기가 5지점 남측의 동측과 서측에서 남북방향으로 각 1기씩 확인되었고,
남서측에서 건물지과 확인되었습니다. 서측의 배수로는 현대 하수관로 조성으로 인해 대부분
훼손되어 정확한 성격과 규모는 확인할 수 없었으며, 동측의 배수로는 배수로의 장대석을
사용하여 조성된 동측 석렬만 확인되어 규모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6지점은 공조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구간입니다.
이중 조사유구는 조사지역의 동측에서만 확인되었고, 조사결과, 추정 배수로 1기과 기단석렬
1기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추정배수로는 조사지역 동측 경계에서 남북방향으로 확인되었으며,
배수로는 양측면이 일부분씩 남아있고 하부에는 견치석을 사용하고 상부에는 장대석을 사용하여
조성하였고, 배수로의 추정 폭은 약 90cm 입니다.
7지점은 육조의 영역으로 민가로 추정되는 구간입니다.
확인된 유구는 7지점의 북서측 일부를 제외한 조사지역 전반에서 확인되었고,
조사결과 민가건물로 추정되는 건물지 약 14동과 우물 2기, 배수로 2기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확인된 유구들은 비슷한 층위상에서 중복된 양상으로 확인되었으며, 교란지역에 Pit를 넣어
조사한 결과 하부에서도 유구가 잔존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출토유물은 16세기부터 18세기에 해당하는 자기편과 기와편이 함께 출토되어 정확한 시기판단은
어려운 상태입니다.
문화재 발굴 현장 중 사헌부터에서 발굴된 유구는 그대로 보존하여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외 발굴된 유구는 보강작업을 한 뒤 양질의 토사를 복토하여 유구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조치하고 상부에 유구재현시설과 안내판을 설치하여 육조의 흔적을 담았습니다. 광화문광장 곳곳에서 육조의 흔적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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